K리그 최다출전 김병지의 반문 “축구하면 꼭 프로선수만 꿈꿔야 합니까” [이근승의 킥앤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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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마스터
    -K리그 최다출전 김병지, 2위 이동국보다 158경기 더 뛰었다
    -프로팀은 물론 대학팀 지명도 받지 못했던 김병지 “직장인 팀에서 프로축구 선수와 국가대표 꿈꿨다”
    -“프로에서 뛴 24년 내내 몸무게 78kg 유지했다”
    -“어제와 다른 오늘만이 밝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
    -“경민대 학생선수들에게 지도자, 행정가, 심판, 해설위원, 유튜버 등 다양한 길 제시하겠다”
     

    대한축구협회 김병지 부회장. 김 부회장은 1992년 프로에 데뷔해 2015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1983년 출범한 K리그 최다출전 기록(706경기) 보유자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의정부]
     
    “김병지만큼 자기관리가 투철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김병지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어요.” 김병지를 아는 축구인들의 공통된 평가다. 
     
    김병지는 1992년 K리그에 데뷔해 2015년까지 골문을 지켰다. 1983년 출범한 K리그에서 김병지보다 많은 경기를 소화한 인물은 없다. 김병지는 K리그 통산 706경기에 출전했다. K리그 최다출전 2위 이동국(548경기·은퇴)보다 158경기 더 뛰었다. 
      
    K리그 최다출전자, 김병지의 축구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김병지는 두 차례 월드컵(1998, 2002) 포함 A매치 61경기에 출전해 72실점을 내줬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병지의 축구 인생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굴곡의 연속이었다. 
     
    김병지는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발도 빨랐다. 공격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골문을 지켰다. 이유는 하나였다. 김병지는 축구부 회비를 내기 힘들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골키퍼를 맡아야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골키퍼 김병지의 성공이 보장된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김병지의 키는 163cm였다. 김병지는 “’프로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키가 20cm 이상 자랐지만 시련은 이어졌다. 김병지는 프로 입단에 실패했다. 대학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김병지는 “프로 입단에 실패한 원인은 하나였다”“프로에서 골문을 지키기엔 여전히 키가 작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길이 막막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믿었어요. 국가대표의 꿈을 놓지 않았죠. 고교 시절 전기용접과 선반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를 활용해 LG 오티스란 엘리베이터 회사에 입사했어요. 그리고 직장인 축구팀에 들어갔죠. 오전엔 일하고 오후엔 운동했습니다. 이후엔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지원해 당당히 합격했어요. 사람들에게 얘기했습니다. 내 꿈은 프로축구 선수고 국가대표‘라고.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미친놈‘이라고 했어요.” 김병지의 말이다. 
     
    김병지는 결과로 보여줬다.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차진 못했다. K리그 10경기에 출전해 11실점을 허용했다. 이듬해부턴 달랐다. 김병지는 굵은 땀방울을 아끼지 않으며 주전 골키퍼로 도약했다. 1995년 6월 5일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조별리그 A조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선 A대표팀에 데뷔했다. 
     
    반짝 활약이 아니었다. 김병지는 K리그에서의 맹활약을 발판으로 A대표팀에서도 주전 자릴 꿰찼다. 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한국의 골문을 지켰다. 
     
    김병지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3경기에서 56개의 유효 슈팅 중 47개를 막았다. 본선에 진출한 32개국 골키퍼 가운데 선방률 2위를 기록했다.
     
    피나는 노력의 성과였다. 김병지는 프로에서 골문을 지킨 24년 내내 몸무게가 78kg으로 같았다. 오직 운동에만 매진했다. 
     
    김병지는 “프로에 입문한 1992년부터 오후 8시 이후 약속을 잡아본 적이 없다”“선수 시절 나와 술을 먹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100% 거짓말”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병지는 이어 다음과 같은 경험담을 들려줬다. 
     
    “운동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습니다. ’선배는 하느님과 동격이다‘ ’선배의 말은 곧 법이다‘란 거예요. 막내 시절 ‘시즌 끝났는데 한잔해’란 선배의 권유를 거절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냈어요. 거절했습니다. 그래야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게 최상의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그렇게 3년을 버티니 선배들이 먼저 얘기했습니다. ‘(김)병지는 술 안 마셔. 물 줘’라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김병지는 그렇게 K리그에서 706경기를 뛰었다. 선수로 뛴 마지막 시즌(2015) 김병지는 K리그1 27경기에 출전해 30골만 내줬다. 45살에도 K리그1 최정상급 선방 능력을 보여줬다. 김병지는 선수 생활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한 경기 이기면 웃습니다. 챔피언 자리에 오르면 눈물이 나요. 정상에 서기까지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릅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해요. 그곳에서 살아남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면 나를 먼저 감동시켜야 합니다. 0.1%의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길 원한다면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해요. 그래야 환희의 눈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은퇴 후 최소 2년은 여유로운 삶 살고 싶었다”
     

    김병지는 프로에 데뷔한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변함없는 기량을 보여줬다(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병지는 2015시즌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처음엔 2년 이상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집 한 채까지 지어둔 상태였다. 
     
    김병지는 “잠시 축구를 잊으려고 했다”“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 여유롭게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24년간 쉴 틈 없이 달려온 삶을 돌아보려고 했어요. 제2의 삶은 천천히 계획하고자 했죠.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은퇴 전부터 연락이 끊이질 않았어요. 해설위원, 코치, 행정가 등 다양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고민 끝 결심했죠. ‘선수가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기회는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김병지는 축구교실 운영(김병지축구클럽), 해설위원, 유튜버(꽁병지tv), 사업가(꽁치킨, 꽁쇼핑)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선활동도 계속한다. 김병지는 1999년 장기기증 서약서를 작성했다. 이후엔 장애청소년 축구 클리닉, 소방공무원 자녀 장학금 후원, 사랑의 연탄 나르기 행사, 다문화가정과 군부대 지원 등을 이어가고 있다.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자선행사도 빼먹지 않는다. 
     
    “내 통장에 돈을 채워주는 건 축구를 사랑하는 팬이다. 받기만 해선 안 된다. 선수 시절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건 팬들에 대한 예의였다. 그 이상을 보답해야 했다. 사회에 모범이 될만한 일을 하는 게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김병지의 말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만이 밝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
     

    경민대학교 축구부 정상남 감독(사진 왼쪽), 대한축구협회 김병지 부회장(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2021년 1월 김병지에게 새로운 직함이 생겼다. 대한축구협회(KFA) 부회장이다. 김병지의 역할은 생활 축구와 저변 확대다. 
     
    김병지는 곧바로 저변 확대에 나섰다. 3월부터 경기도 의정부시 경민대학교 축구부 창단에 힘을 보탰다. 경민대 홍문종 설립자가 축구부 창단 뜻을 내비치자 발 벗고 나섰다. 
     
    김병지는 3월 15일과 23, 29일 경민대 레포츠학과 교수들을 만나 축구부 창단 준비를 시작했다. 4월엔 축구부 창단 실무 준비와 수요조사, 감독 면접 등을 도왔다. 5월 23일 김병지의 도움을 받은 경민대는 축구부 창단을 발표했다.
     
    김병지는 “대학 스포츠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재능은 K리그 유소년팀에서 성장해 프로에 데뷔한다”고 말했다. 
     
    “바뀌어야 합니다. 프로축구 선수 하나만 보고 달려 나가는 시대는 지났어요.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경민대 축구부에 몸담을 학생에게 축구는 기본이예요. 프로축구 선수를 비롯해 지도자, 심판, 행정가, 스포츠마케터, 해설위원, 유튜버 등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 줄 거예요. 이젠 프로의 제안을 받지 못해 꿈을 저버리는 학생선수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프로축구 선수가 아니어도 새로운 길이 있다는 걸 보여줄게요. 그게 축구 선배이자 어른들의 역할입니다.” 김병지의 생각이다.
     
    김병지는 경민대 평생교육원 교수이자 스포츠 디렉터 역할을 맡는다. 경민대 축구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
     
    “힘들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어제와 다른 오늘만이 밝은 내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이가 대학 운동부는 미래가 없다고 해요. 직장인 축구팀 골문을 지킨 청년이 K리그 최다출전 기록을 세웠습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본선 무대를 누볐어요. 실천과 결과로 보이겠습니다.” 김병지의 다짐이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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