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피플] 여전히 뜨겁게 한국을 추억하는 ‘바람의 아들’ 마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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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 일레븐)

    ◆ ‘피치 피플’
    前 부산 아이파크·인천 유나이티드 FW
    라디보예 마니치

    퀴즈를 내겠다. 1990년대 후반 K리그에 등장해 꽤 센세이션을 일으킨 외인 공격수가 있다. 1996시즌 부산 대우 로얄즈(現 부산 아이파크)에서 데뷔한 후, K리그 2년차에 13득점 6도움이라는 MVP급 활약을 펼치며 부산의 한 시즌 전관왕 등극이라는 커다란 업적에 일등 공신을 한 선수가 있다. 1997시즌부터 K리그에서 보낸 마지막 해인 2005시즌까지 공격 포인트를 꾸준히 쌓아나가며 리그 최고 수준 외인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력적으로 우수하기도 했지만, 플레이스타일이 무척 도드라진 선수기도 했다. 엄청난 스피드로 상대 수비진을 깨뜨리는 플레이에 능했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바람의 아들’이라는 애칭을 붙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한국을 떠난지 15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아들’이라는 이 별명은 여전히 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쯤이면 “아, 그 선수”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부산과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한 세르비아 골잡이 마니치가 그 주인공이다. 그 마니치가 <베스트 일레븐>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한국 축구팬들에게 근황을 전해왔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K리그에서 보냈다”

    “한국과 관련한 모든 것을 얘기할 때마다 가슴이 설렙니다. 물론 제가 세르비아인이라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래도 전 한국을 무척 사랑합니다. 전 한국인들을 제 국민처럼 사랑했고요.”

    마니치는 여전히 한국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마니치가 이처럼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한국팬들의 축구 보는 안목이 대단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마니치는 “한국 팬들의 사랑을 얻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저는 그걸 해냈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그의 인생에 있어 ‘리즈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마니치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부산과 인천에서 보냈다. 특히 부산에서 그랬다. 샤샤 등 함께 뛴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K리그에서 보낸 아름다운 순간을 여전히 기억한다”라고 추억했다.

    실제로 그랬다. 앞서 언급했듯 마니치는 한국에서 정말 즐거운 경험을 쌓았다. 앞서 소개한 독보적이었던 1997시즌 우승 당시 활약뿐만 아니라, 1999시즌에도 리그 최정상급 활약(9득점 9도움)을 펼치며 팀의 준우승을 주도했다. 이후에도 열 개 남짓한 공격 포인트를 꾸준히 올리며 스타 공격수 대우를 받았으며, 심지어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1997 코리아컵 출전을 위해 방한했을 때는 당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국가대표로 데뷔하기도 했다. 선수로서 맛본 모든 영광을 K리그에서 경험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 국적을 간절히 원했지만 무산됐죠. 그렇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며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1999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 당시 샤샤의 핸드볼 골도 기억에 남네요. 아쉽지만, 축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 봅니다. 다만 전 그 경기에서 출전하지 못했는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안한 감정을 안고 있습니다.”

    물론 늘 좋았던 건 아니다. 마니치는 인천에서 활약하던 2005년 한국 귀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리그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장수 외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한국인 선수’가 되길 갈망했고, 실제로 ‘마니산’이라는 이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수원 삼성을 상대했던 1999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 당시의 기억도 아쉬움이 남는다. 마니치는 이해 샤샤에 버금갈 정도로 리그 최고 수준급 활약을 펼쳤다. 실제로 당시 미디어에서는 마니치와 샤샤의 대결로 부각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선지, 마니치는 매우 큰 논란을 낳았던 샤샤의 핸드볼 골을 “축구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돌아봤다. 샤샤의 핸드볼 골보다는, 챔피언 결정전 2라운드서 결장했던 게 마니치의 마음에는 더 큰 짐으로 남아있다.

    “저는 요즘 사립 유소년 축구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치로도 활동 중이죠. 언젠가 저의 부산으로 돌아가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제 지식을 전하고 가르치고 싶습니다.”

    2007년 믈라데노바치에서 은퇴한 마니치는 현재 세르비아에서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역 시절 K리그에서 용광로처럼 뜨겁기로 소문났던 그의 열정은 이제 후학 양성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마니치는 자신을 넘어서는 훌륭한 선수들을 길러내는 게 요즘 축구 인생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꼭 한국 축구팬들에 전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모처럼 한국 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만나게 된 만큼, 마니치는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게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길 바랐다.

    “한국에서 즐겁게 뛰었습니다.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라디보예 마니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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