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울산 문수구장의 논두렁 잔디는 어떻게 양탄자로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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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울산현대는 최근 2~3년 사이 경기 스타일이 많이 변한 팀이다. 과거 ‘철퇴축구’로 불리우던 롱볼과 하이볼 중심의 축구에서 높은 볼 점유와 매끄러운 패싱게임, 빠른 전환의 축구가 자리 잡았다. 특히 홈인 문수구장에서는 리그에서 가장 공격적인 팀으로 변신한다.

    코칭스태프와 선수의 구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잔디 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울산은 2019년 하반기 전면 교체 후 리그 최상의 잔디 상태를 유지 중이다. 누가 봐도 보기 좋은 잔디는 축구를 하기에도 좋다. 불규칙 바운드가 거의 없이 의도한 대로, 목적성 높은 플레이를 가능하게끔 만드는 최적의 잔디가 문수구장에 깔려 있다. K리그 팀 상당수가 열악한 잔디 위에서 악전고투를 펼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잔디는 가장 예민한 생물 중 하나다. 최상의 상태를 시즌 내내 유지하려면 잔디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개선, 이후 관리를 위한 우수 인력과 장비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경기장 관리 주체와 사용 주체 간의 협력도 중요하다. 한때 K리그 최악의 잔디를 보유했던 문수구장이 양탄자 같은 잔디 상태로 극적인 변화가 가능했던 것도 그 조건이 달성됐기 때문이다. 문수구장을 총괄하는 울산시설공단 엄현섭 차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과정을 알아봤다. 

    – 2018년까지 문수구장의 잔디 상태는 리그에서도 최하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은 리그 최상급이고, 최근 프로축구연맹이 진행한 컨설팅 과정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극적 변화가 있었나요?
    문수구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 맞춰 2001년 개장한 경기장입니다. 월드컵 전에 잔디가 뿌리를 내려야 하다 보니 파종을 하면서 생육이 빨라 조기에 그라운드에 피복되는 페레니얼 라이그래스, 그리고 한지형 잔디의 대표 격인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같이 썼습니다. 그런데 잔디의 종에 따라 생기는 병이 다르고, 써야 하는 약이 다르다 보니 동시 처방하기가 어려웠고 관리도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문수경기장이 잔디 생육 조건이 좋지는 않은 구조입니다. 일단 위치상 남쪽으로는 햇볕이 안 들어옵니다. 지하 1층에 그라운드가 딸린 구조다 보니 지붕과의 고저 차가 크고 공기 순환이 안 좋아 잔디에 병이 들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그런 복합적 문제가 누적된 상황에서 병균들이 토양 속에 서식하니까 관리만으로는 개선이 힘든 상황까지 갔습니다. 그런 상태로 18년을 끌고 온 것지요. 사실 잔디는 10년에 한번은 전면 교체가 필요합니다. 시설공단을 통해 예산을 집행하는 울산시에 계속 요청을 드렸지만, 예산이 많이 드는 사업이다 보니 2019년에야 할 수 있었습니다. 2019년 하반기에 교체 후 아직까지는 좋은 상태라고 평가합니다. 계속 관심을 기울이며 관리를 해야 하지만 언제 상황이 안 좋아질지 모르는 게 잔디 관리의 어려움입니다. 

    – 기존에 두 종의 잔디가 혼재 돼 있었다면 현재는 어떤가요?
    현재는 지금 한국 기후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켄터키 블루그래스로 100% 식재한 상태입니다. 예전에 안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페레니얼 라이그래스는 고온에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름이 되면 잔디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였던 거죠. 켄터키 블루그래스와 생육 경쟁을 벌이면 라이그래스가 더 우위에 섭니다. 그러다 보니 2019년 전까지 문수경기장은 점점 라이그래스의 비중이 커지고 있었죠. 라이그래스가 나쁜 잔디라는 건 아닙니다. 유럽 쪽은 라이그래스를 많이 쓰는데 그건 여름철 온도가 우리보다 높지 않으니까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균일하게 관리를 가져가야 하니까 선택을 해야 했고,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름철 기온과 강우에 따라 다르지만, 이전보다는 관리의 조건 자체는 좋아진 게 사실입니다. 

    – 잔디 전면 교체 작업 때 토양까지도 같이 교체를 진행한 것인가요?
    2001년에는 아직 울산현대 구단이 문수구장을 홈으로 사용하지는 않았고, 월드컵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어서 파종을 했습니다. 반면 2019년에는 구단이 울산종합운동장으로 잠시 옮겨 갔지만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 했으니까 외부에서 파종해 키운 것을 떼장으로 가져와 식재를 했습니다. 대신 토양은 50cm 깊이로 완전히 갈아엎었습니다. 토양 속에 든 병균 등을 제거할 필요가 있죠. 긴 시간 사용하면 블랙 레이어라고 해서 물이 들어오질 않고, 뿌리가 내리지 못하며, 가스가 쌓이는 층도 생기기 때문에 토양은 새로 교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2019년 하반기 동안 문수구장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대적 교체를 한 효과도 있겠지만, 이후 관리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현재 잔디 관리는 어떤 형태로 이뤄집니까?
    누구한테 물어봐도 잔디는 심는 것보다는 관리하는 부분이 더 힘듭니다. 노하우가 쌓여가는 게 중요합니다. 문수구장은 울산시의 재산이고, 관리수탁을 받아서 관리공단에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잔디 상태가 좋지 못했던 게 사실이고, 그 시행착오를 통해 전임 관리자 분들이 데이터를 축척했습니다. 이런 저런 비료를 써서 도움이 됐는지, 역효과가 났는지 등의 데이터가 20년 간 축적이 됐습니다. 그걸 기본으로 관리를 하니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문수구장이 생기고 역대 저 포함 역대 3명의 관리자가 계셨습니다. 첫번째 관리자 분이 가장 고생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셔야 했으니까요. 저희가 칭찬을 받는 건 이전 관리자 분들의 유산이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분들이 현장에서 잔디를 관리하며 직접 뛰시는 그라운드 키퍼 분들입니다. 그 분들도 계속 바뀌죠. 저희는 잔디 관리와 조경 관리 업무를 동시에 하는데, 잔디 관리가 너무 힘드니까 6개월을 못 버티고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에 딱 한 분이 15년 동안 이 문수구장을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라운드 키퍼 중 조장 역할을 하는 왕길상 반장님입니다. 상당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구단 관계자, 그리고 코칭스태프 분들이 경기장에 오면 가장 먼저 인사하는 분도 반장님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면 감사합니다. 저는 전보를 통해서 부서를 오고 가는 사람이고, 여기 오래 계신 반장님을 대우해주는 게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저희는 자료와 데이터로 보지만 반장님 머리 속에는 이 시기 경기장 내 어느 구간에 어떤 병(패치)이 발생하는지 알고 먼저 순찰을 하십니다. 정말 이 일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정년을 3년 앞두고 2~3년 전부터 후계자들을 양성하고 계십니다. 왕 반장님은 이 분야의 장인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문수구장은 저 외에 고정으로 현장을 관리하는 정직원이 3명, 기간제 직원이 4명으로 총 7명이 하고 있습니다. 

    – 지난해 인공채광기 도입 등 기술적인 부분의 진보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잔디 관리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지요?
    저희는 성장조명이라고 부릅니다. 작년에 네덜란드에서 무상 임대를 해 와서 1년 동안 가동을 했습니다. 남측 골대 부근은 아까 얘기드렸다시피 경기장 구조 상 하루 종일 해가 안 듭니다. 그런데 골대 앞이 선수들의 움직임이 가장 치열하다 보니까 항상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결과치를 보니까 성장조명 활용 전 동계 때의 잔디 뿌리가 보통 6~7cm인데, 활용 이후 15cm까지 내려갔습니다. 뿌리 굵기도 굵어졌고요. 효과는 확실히 있습니다. 다만 임대해 온 기계가 1억원이 넘는 장비입니다.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이런 효과를 시에 어필해서 향후에 도입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경기장 남측 골대 앞처럼 조건이 안 좋은 구역에는 최근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미생물 비료도 시험적으로 써볼 예정입니다. 잔디 전문가 분들에게 조언을 받습니다. 채광과 광합성이 약한 구간에 그 제품을 써서 효과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 경기장 구조 자체가 잔디 생육에 장애를 준다고 하셨습니다. 월드컵 이후 전용구장 중 문수구장처럼 땅을 파고 들어간 지하 설계 구조가 여럿 있는데 일조량과 통풍에서 애를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공기 순환이 안되다 보니까 여름철에 환기를 위해 대형 송풍기를 가동해야 합니다. 문수구장은 이전에 처음 도입한 장비 6대를 가동하다가 성능이 좋은 최신 제품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3대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K리그 내 몇몇 경기장도 비슷한 조건일 것입니다. 지금 와서 건축물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으니 관리 방법을 개선하는 수 밖에 방법이 없지만, 역시 이 부분도 돈이 드는 문제입니다. 

    – 여름에 많은 경기를 하는 K리그 스케줄의 특성도 잔디 관리와 생육에 치명타가 될 텐데요? 올해는 6, 7월에 경기가 적어서 오히려 이전보다 좋은 상태를 기대할 수도 있을까요?
    경기장에 깔린 잔디는 일반인들은 양잔디라고 부르는 한지형 잔디입니다. 공원에 깔린 것이 난지형 잔디고요. 한지형 잔디는 추운 날씨를 잘 견디는 대신 고온에 취약합니다. 7~8월은 잔디 생장이 멈추는 휴면기여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 시기에 경기가 많죠. 선수들이 그 위에서 뛰면 훼손이 됩니다. 4~6월 같은 경우는 경기 후 관리를 하면 회복이 되는데 7~8월은 회복이 안 됩니다. 더 나빠지지 않게만 하면 다행입니다. K리그 경기장들의 공통된 현실입니다. 올해는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이 밀리는 바람에 6~7월에 경기가 줄었거든요. 그때 최대한 건강한 잔디로 키워서 8월에 큰 병이 발병하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죠. 올해는 다행히 그런 점이 유리해졌죠. 모든 구장이 여름 나기가 가장 힘들어서, 잔디를 관리하는 분들은 여름 휴가는 엄두도 못 냅니다. 잔디라는 게 작은 구역에 한번 병이 발생하면 삽시간에 퍼집니다. 여름 휴가는 언감생심이죠. 

    – 최근 한반도 기후의 변화(국지성 호우, 고온다습한 여름이 길어짐)에 따른 잔디 관리의 능동적 대응도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저희 구장은 재작년에 공사를 하면서 잔디뿐만 아니라 토양에 배수, 배관 시설을 다 묻었습니다. 그래서 집중 호우에도 물은 고이지 않죠. 저희가 감당하지 못하는 호우가 와도 문수구장은 인공적 배수로가 좌우에 배치돼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것도 불안해서 물을 빼낼 수 있는 양수기를 군데군데 설치해 놨습니다. 이중삼중으로 보험을 들어 놔야만 합니다. 

    – 그라운드를 쓰는 선수와 지도자, 그걸 지켜보는 팬들은 관리의 어려움과 과정은 잘 모르니까 결과물만 놓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당자로서 서운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희 본연의 업무니까요. 각자 맡은 책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거고요. 저희 일이니까 화살이 돌아와도 어쩔 수 없지만, 이 기사를 통해 말씀드리면 한지형 잔디가 워낙 민감하거든요. 저희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언제 문제가 발생하지 모르니까요. 잔디 전문가는 한국에 거의 없습니다. 조경을 전공한 분들이 처음 수목을 접하다가 잔디를 접하면서 디테일하게 공부하고 담당을 하게 됩니다. 다른 수목을 성인에 비교하면, 한지형 잔디는 신생아에 비교됩니다. 일반 성인은 감기가 걸려도 시름시름 아프다가 이겨내는데 신생아는 작은 병에도 취약하니까 계속 지켜봐야 되잖아요. 정말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불과 수 시간 안에 병이 경기장을 다 뒤집어버립니다. 그만큼 민감한 식물이라는 것이고요. 잔디 퀄리티를 높이려고 여름 휴가도 못 가고 열심히 일하시니까 문수구장 뿐만 아니라 다른 구장에서 생육 장애가 발생해도 너무 뜨거운 화살만 날리지 마시고 따뜻한 격려를 부탁합니다. 

    – 돈과 인력의 문제 외에 다른 어려움은 없습니까? 현재 대부분 경기장은 지자체 관리공단과 구단의 2인 3각이 중요한데. 울산 구단은 울산시설공단과 어떤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지요?
    금액적인 부분은 울산시에서 매년 교부하는 예산 안에서 시설관리공단이 관리 중입니다. 울산시민들께서 울산현대가 현재 축구를 잘 하고 있으니까 축구단에 대한 애정이 상당합니다. 경기장에 드는 체육시설에 대해 시에서도 예산을 아낌없이 주고 있습니다. 금전적으로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어 시 지원에 감사합니다. 울산현대는 저희와 다른 기관이지만 손발이 잘 맞습니다. 매우 오래 지내다 보니까요. 구단에서 담당자가 바뀔 수 있는데 그러면 서로가 놓치는 부분을 채워줍니다. 네 일, 내 일로 구분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소통이 너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축구전용구장인데 수익성을 위해 콘서트 등을 위한 대관이 많이 되니까 잔디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구장마다 여건이 더 안 좋아지죠. 문수구장은 몇 년 전까지 대관을 받았는데 3년 전부터는 일절 경기 외의 대관은 안 받습니다. 그러면 손상도 받지만, 관리할 수 있는 시간도 줄거든요. 그런 것들이 수준 높은 잔디 질이 나오지 못하는 숨은 이유죠. 콘서트 외의 일반 대관도 한 몫 했고요. 저희는 그걸 막으니까 잔디가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많은 분들이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잔디 관리를 위한 축구계 차원의 지원은 이뤄지고 있나요?
    최근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K리그 전 경기장의 잔디에 대한 컨설팅을 아웃소싱했습니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골프사업팀 소속 잔디환경연구소와 파트너십을 맺고 연중 2차에 걸쳐 잔디품질 진단에 관한 현장 조사를 진행한다. 잔디 생육을 위한 전반적 개선 방안을 조언한다) 올해가 처음입니다. 조사단이 각 구장을 다니며 어떤 병이 발생했는지, 어떤 비료 성분이 부족한지 대화를 나누고 자료를 가져갔습니다. 혼자 고민하다 보면 정답이 없습니다. 유선 상으로 수시 문의가 가능하고, 시료를 보내면 그것을 분석하고 컨설팅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프로축구연맹의 관심과 도움에 감사합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문수구장의 좋은 잔디 질이 울산의 경기 질의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금 울산은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요. 최근 국가대표 선수도 가장 많이 배출했고요. 저희가 잔디를 잘 관리해서 그 선수들이 부상 없이 마음껏 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상태를 마련하려고 노력하고요. 많은 시민들이 코로나 시국에도 경기장을 최대한 찾아서 관중석을 채워, 울산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시는 모습이 저희에겐 가장 보람됩니다. 무엇보다 올해는 울산이 꼭 우승하면 저희 일이 더 보람찰 것 같습니다. 

    사진=울산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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